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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으로 끝난 미국독립혁명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21-05-27



미국도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알고 계셨나요?


사실 미국은 영국에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스턴 차 사건도 미국독립혁명과 연관이 있죠.


그렇다면, 보스턴 차 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이는 종교와도 관련이 있는데요. 당시 왕이었던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청교도 사람들을 박해하여 그 종교를 믿던 영국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넘어가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흥미진진하죠?


그럼, 프랑스 혁명과 함께 양대 민주주의 혁명으로 유명한 미국독립혁명을 그림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 미국독립혁명의 시초, 보스턴 차 사건



영국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으로 끝난 미국독립혁명 관련이미지1 

보스턴 차 사건 /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청교도였던 영국 사람들은 영국의 제임스 1세의 박해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결국 102명의 청교도 사람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로 향했답니다.


낯선 땅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던 그들의 삶은 쉽지 않았는데요. 죽음까지 감수하며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마을을 만들게 되었고, 영국에서 종교적 자유를 갈망하며 아메리카로 온 청교도 사람들처럼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메리카 동해안 쪽에 13개의 주가 세워지기도 했죠.


그럼, 영국에서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당시 영국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는데요. ​부족했던 재정과 더불어 아메리카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영국은 아메리카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생각해냈습니다.


논의 끝에 영국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세금을 걷기로 결정했죠. 당연히 아메리카 쪽에서 반발이 심했는데요. 그러자 영국은 아메리카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하며, 동인도 회사만 아메리카에서 차를 팔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메리카 보스턴의 차 상인들은 더 이상 차를 팔 수 없게 되자 화를 냈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신분을 감추고 인디언으로 변장을 한 뒤, 동인도 회사의 배에 들어가서 홍차 상자 342개를 부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스턴 차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동인도 회사는 많은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또한,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킨 식민지 사람들을 당연히 좋지 않게 생각했죠. 그래서 분노하며, 차 값을 변상하라고 강하게 말하고, 보스턴 항구를 막기도 했답니다. 이러한 일은 식민지 사람들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2. 미국의 독립! 영국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났을까?


화가 난 아메리카 사람들은 영국을 이기기 위한 방안에 대해 회의했는데요. 그 결과, 영국의 상품은 모조리 사지 말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나라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갔죠. 그러다 영국군과 아메리카 군대는 큰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요. 예상 밖으로 아메리카가 승리하게 되었답니다.


 영국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으로 끝난 미국독립혁명 관련이미지2

미국 독립선언문 /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싸움에서 이긴 아메리카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으며, 미국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더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마침내 독립선언서까지 발표하게 되죠. 이 독립선언서에는 민주주의의 내용이 들어가 있었는데요. ​​“생명, 자유, 행복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답니다. 이후 많은 국가들의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던 이 독립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미국의 세 번째 대통령이기도 했죠.


독립선언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립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으로부터 지배받던 아메리카의 13 주의 사람들은 무기도 모자라고, 병사들도 많지 않아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맞서 싸워나갔는데요. 하지만, 영국의 큰 부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답니다. 아쉽게도5년 동안 무참하게 패하게 되었죠.


그러던 중, 아메리카 독립군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아메리카를 도와주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든든한 도움을 받게 된 아메리카는 영국의 군대와 마주쳐 또다시 싸움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죽음을 생각하고 싸운 아메리카 독립군이 이기게 되었답니다. 프랑스의 도움이 컸다고 하네요. :)




영국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으로 끝난 미국독립혁명 관련이미지3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 /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영국 본국군 사령관이었던 콘월리스 장군은 결국 항복하였으며, 아메리카의 독립을 인정했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영국으로부터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 ‘미합중국’이 되었답니다. 참고로, 이때 아메리카 독립군을 이끌었던 워싱턴이 미국의 첫 대통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워싱턴은 두 번의 대통령직을 마친 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는데요. 그런 그는 어떻게 미국독립전쟁에서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전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했을까요?


군인이었던 워싱턴은 어렸을 때부터 전쟁 경험을 쌓으며, 군인들의 교육과 훈련, 그리고 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13개 주 군대를 지휘하는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 뽑혔던 것이죠.


그렇게 '독립'이라는 좋은 결실을 만들어 낸 그는 미국의 첫 대통령이 되었고, 새로운 나라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실히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죠.


하지만, 세 번째 대통령직은 거절했다고 하네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워싱턴은 미국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제를 안정화하고, 민주주의의 기틀도 마련해 현재까지 귀감이 되고 있답니다.

 
미국의 독립혁명 어떠셨나요?

미국도 식민지 시절이 있었다니 새롭기도 한데요.

포기하지 않았던 아메리카 독립군의 의지가 이루어낸 결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독립선언서에서 민주주의를 간절히 원했던 이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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